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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4/21 RFID, 야누스의 두 얼굴 (12)

RFID, 야누스의 두 얼굴


미국 정부가 RFID 여권을 발급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나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미 국토안보부가 앞으로 생산될 RFID 여권은 근접 식별 방식이 아닌 원격 식별 방식을 사용할 수 있도록 그 인식 범위를 30피트(약 9.14미터)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반경 9m 내에만 있으면 내장된 정보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새 여권이 필요한 이유는?! 출입국 수속에 걸리는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라고 한다. 국토안보부 관계자는 "붐비는 공항에서 줄을 서 본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동의"하기라도 할 것처럼 말하고 있다. 경제적 효율성만을 강조한 그의 제안은 물론, 현실화되기에 앞서 미 의회에서 대단한 반대에 부딪힐 것이다. 대량의 개인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RFID는 IC chip처럼 수동적인 스캐닝도 필요하지 않으며, 그저 인식범위 내에만 있으면 자동으로 인식된다. 즉 사람들은 출입국 수속을 위해 줄을 설 필요조차 없이 그냥 걸어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강력한 인식 능력이 바로 편리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지점이다. 센서를 가진 어떤 사람이 근처에만 있으면 슬슬 돌아다니면서 정보를 빼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상 해킹에 불가능이란 없다.) 이러한 반대 의견을 의식한 듯, 국토안보부에서도 대책을 내놓았다. 암호화 기술을 채택하고, 여권 앞표지를 antiskimming 자재로 코팅하고, Mylar로 만들어진 특수 커버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대체 뭐가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러한 대책을 나열해야 한다는 것은 오히려 그만큼 위험하다는 것의 반증 아닐까?!

RFID는 확실히 여러 가지 편리한 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파장은 매우 달라질 수 있다. 불법적인 정보 추적을 막기 위한 보안 장치도 결국은 언젠가는 구멍이 뚫릴 것이고, 따라서 필연적인 악순환이 지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RFID를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부분에 적용하는 것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 언젠가는 RFID 여권, 혹은 RFID 주민등록증이 도입되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가능하다면 한 걸음이라도 그 흐름을 늦추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하지만 물류 유통 및 판매와 같은 분야에는 RFID를 도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신기술이 발명되었다면 활용을 해야하지 않겠는가. 단, 그것이 적절한 분야라면 말이다.

국내의 RFID 도입과 관련된 한 사례가 있다. 며칠 전 연세대학교에서 있었던 특강 때 들은 이야기이다. RFID 도입에 있어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국내의 모 백화점에서, 상품에만 RFID를 부착하는 것을 넘어 고객관리에도 RFID를 도입했다고 한다. 구매액 순으로 상위 1000 명의 VIP 고객을 선정한 뒤 그들에게 특별히 RFID가 내장된 카드를 나누어주었다는 것이다. "그냥 차에 두시면 됩니다." 라고 이야기하면서. 그 다음은?! 상상한 대로이다. 해당 고객의 차가 백화점 반경 수 미터 내로 접근하면 알림 서비스가 작동한다. 백화점의 담당 직원은 즉시 밖에 나가서, 고객을 영접하고 차를 주차시키는 등 최대한의 쇼핑 편의를 봐주는 것이다. 고객들이 좋아했을까?! 아마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추후에 이 RFID 카드 때문에 고객의 자택은 물론 이동경로가 모두 포착되고 통제될 수 있음이 알려지자, 서둘러 카드를 회수하는 해프닝이 일어났다고 하니까. 같은 기술도 어떤 사람이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모양새가 이렇게 달라진다.

반면 다른 사례도 있다. 알려진 것처럼 RFID는 물류 유통 및 판매에 가장 흔히 쓰인다. 우리나라 정보통신부에서도 U-IT 사업을 진행하면서 RFID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사업은 잘 수행된다면 신기술의 장점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좋은 사례이다. 예컨대 국방부의 탄약 관리, 환경부의 감염성 폐기물을 들 수 있겠다. 환경부의 감염성 폐기물 관리시스템은 모든 감염성 폐기물 배출 용기에 RFID tag를 부착해 폐기물의 발생에서부터 수집, 운반, 최종 처리에 이르는 전 과정을 통제하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인터넷 기반 시스템을 운영해왔으나, 인터넷 기반 시스템은 RFID를 적용했을 때처럼 자동화된 시스템이 아니라 수동 시스템이므로 오류 발생의 여지가 있었다.(입력자의 오류, 폐기물의 실제 인수인계 시점과 전산입력 시점 간 불일치 등) 특히 감염성 폐기물과 같이 면밀한 관리가 필요한 경우에는 다른 분야보다 RFID 기술을 도입하는 것이 더 요구될 것이다. 환경부는 이 사업 이후에 음식물 쓰레기 등으로 RFID 도입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한다.

두 가지의 대조적인 사례는 RFID가 갖고 있는 야누스의 두 얼굴을 보여준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신기술을 잘 활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늘 위험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현재로서는 개인 정보 혹은 프라이버시를 담고 있는 DB를 RFID tag로 단번에 인식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시기상조일 것이다. 비단 RFID가 아니라 IC chip이라도 마찬가지다. 특히 한국처럼 주민등록번호 하나가 곧 모든 것을 의미하는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신기술에 대해서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도입을 반대하는 것을 살펴보면, 거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신기술에 대한 맹신도, 신기술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도 불합리한 것이겠지만 세심한 고려를 요구하는 태도는 결코 불합리한 것이 아니다. 그동안 SF에서 묘사되었던 모든 것들이 우리 앞에 현실로 놓여져있다.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는 고스란히 우리의 책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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