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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06/05/10 블로거의 글에 정당한 보상을 (19)
  2. 2006/05/09 날씨 좋은 날 책 한 권? - 언니네 방 (6)
  3. 2006/03/29 저작권과 공정이용, 만화로 만나보세요! (10)
  4. 2006/03/01 우울한 열정 (7)
  5. 2005/12/05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 (9)
  6. 2005/10/15 Net, Web, and counter-Net (3)
  7. 2005/08/15 Personal, Portable, Pedestrian (3)

블로거의 글에 정당한 보상을


얼마 전에 Harris님께서 "블로그 검색도 RSS 검색도 나름대로 기술적인 평판시스템이 있겠지만 서비스적으로 풀어줘야 할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미디어 파워를 블로거에게 실어줄 수 있는 훌륭한 Scheme이 필요하다."라고 쓰셨던 것이 기억이 난다. 요즘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 블로거들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마치 이를 반영하듯, 엇비슷한 서비스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예컨대 메타블로그 사이트의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블로거들이 생산한 컨텐츠를 다른 곳에도 공급하는 서비스를 가장 간단한 모델로 들 수 있다. 이런 모델은 국내외에서 동시에 출현하고 있는데, 창의적인 기획력을 보여주는 사이트는 사실상 부재하며 "one source multi use"라는 단순한 법칙을 따름으로써 "누이 좋고 매부 좋은" win-win 전략을 실현하고 있음을 표방(만?)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 주목받았던 사례는 해외에서는 BlogBurst, 국내에서는 블로그플러스를 들 수 있다. 둘다 서비스의 핵심을 아주 적나라하게 공개하고 있는 것이 재미있는데, 전자 쪽이 좀더 솔직해보인다. BlogBurst는 메인 화면에 "You get visibility, audience reach and increased traffic, while publishers get a wide range of new coverage to broaden their reach and increase page views."라고 적고 있다. 한편 블로그플러스는 도움방 블로그에 "블로그가 진정한 의미의 1인 미디어가 되도록 지원합니다. 블로그의 글이 인터넷 신문의 온라인 매체 뿐만 아니라 신문, 잡지, 방송 등의 오프라인 매체까지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와드립니다. 일간스포츠, 중앙일보와 같은 신문, 그리고 무비위크, 프라이데이, 쎄씨 등의 잡지와 제휴하고, 랜덤하우스중앙 출판사와 손을 잡아 진정한 블로그 퍼블리싱의 세상을 지향하고 있습니다."라고 올려놓았다. "진정한 의미의 1인 미디어가 되도록 지원"과 같은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주류 미디어에 글을 싣게 해주면 그 블로그의 가치가 올라간다는 생각은 여전히 주류 미디어가 더 뛰어나다는 시각만을 보여주고 있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위와 같은 말놀이는 필요 없다. 적나라하게 얘기해서, "너네들은 트래픽 늘려. 우리는 컨텐츠 가져갈게."일 뿐이다. 즉 컨텐츠를 제공한 보상은 PV 혹은 UV일 뿐이다. 그밖의 보상에 대해서는 어디에도 언급된 바 없으니까. 그러나 그 미디어들이 컨텐츠의 폭을 다양화하면서 얻는 판매 수익이나 광고 수익은 누구에게 돌아갈까?!

가끔 블로그 때문에 원고 청탁을 받으면서 의아하거나 불쾌할 때가 있을 것이다. 상대방이 "우리 잡지에 실어주었으니 그걸로 만족하렴."과 같은 태도를 보일 때이다. 하나의 채널을 "일시적으로" 얻은 것이 블로거들에게 정당한 보상 체계로 기능하는 것은 아니다. 1) 컨텐츠에 따른 정당한 (금전적) 보상을 받거나 2) 고정 채널을 확보함으로써 네임 밸류를 얻거나 하지 않는 이상. 단순 CP(content provider)로 "전락"하는 것은 글을 싣지 않은 것만 못하다. 메일 한 통으로 (혹은 그조차도 없이) 블로거들의 글을 맘대로 가져다 쓸 수 있는 제멋대로의 권력을 가진 사람들과 블로거들의 관계가 비대칭적이라는 것은 누가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나는 그런 식의 관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좋은 저작물을 생산하는 블로거들은 그만큼의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 블로그플러스에서 놀아야 할 정도로 상황이 열악하다는 것이 슬픈 일이다.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보니 그야말로 스포츠 신문처럼 이것저것 짜깁기 해놓은 것이 완전히 내 취향 밖이다. 당연하다. 편집자의 관심은 블로그에 있는 것도 아니고, 편집자의 애정이 블로그에 있는 것도 아닐테니까. (공지사항과는 달리.) 조만간 블로거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메타사이트 편집 모델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 밥에 그 나물만 보는 것도 지겨운 일, 타이밍이 더 늦기 전에 한국에서 좀더 획기적인 모델이 먼저 탄생하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웹 사이트를 오픈할 능력도 자원도 없으나, 내가 서 있는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다. 블로거들의 글을 모아 을 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또 하나의 매체로 블로거들이 진출하는 것에 의의를 두는 것이 아니라, 이 과정을 통해 블로거들이 자신의 글만으로 특정한 보상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 때 놓치지 말아야 할 세 가지가 있다. 1) 블로거들이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소재와 주제를 간파하고 있어야 한다. 2) 비-블로거들이 블로거들로부터 얻고 싶어하는 소재와 주제를 포착해 내야 한다. 3) 블로거들, 그리고 블로거들의 글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책을 만드는 책임편집자/책임편집시스템이 존재해야 한다. 블로거들끼리만 알아듣는 글은 안 된다. 충분히 정보적이거나 아니면 충분히 감동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저자들 이름이 주르륵 나열된 책은 무성의해보인다. 책임편집자가 글의 줄기를 짜고 글의 내용을 적절히 배치해야 한다. 각 저자들의 장점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형식으로 말이다.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블로거들의 글을 원하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그에 호응해 줄 수 있는 능력 있는 블로거들도 지켜보고 있다. 실은 지금 조금씩 목차를 구상중이다. 차근차근 준비한다면 좋은 선집을 출판할 수 있지 않을까?! 노력해 볼 일이다.

날씨 좋은 날 책 한 권? - 언니네 방


언니네 방 - 내가 혼자가 아닌 그 곳

언니네 사람들

갤리온
2006년 3월 27일

* 이미 "베스트셀러"가 되어버려서, 굳이 내가 소개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읽었을 것 같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글을 써 본다.



언니네(언니네트워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2005년도 정보트러스트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한 이 사이트에는 [자기만의 방]이라는 섹션이 있다. (글의 특성상 비회원은 열람할 수 없다.) 2000년에 시작된 언니네는 2001년에 [자기만의 방]을 열게 된다. 사실상 그 당시부터 언니네를 보아왔던 사람들은 [자기만의 방]이야말로 한국 최초의 블로그, 혹은 블로그의 원형이라고 이야기한다. RSS, trackback과 같은 기술적 장치들이 없었을 뿐, 그것은 진정 여성들의 솔직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블로그였다. 그리고 동시에 여성들의 쉼터이자 공론장이기도 했다.

2006년 3월, 이 블로그에 담긴 목소리들이 책으로 모아져 출간되었다. 나는 언니네 편집팀의 친구를 통해 책이 나오자마자 볼 수 있었는데, "드디어 나오는구나" 싶어서 대단히 기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5년 동안 쌓여온 주옥같은 글들 중에서 몇 편을 뽑았으니 과연 깔끔한 글 모음집이 탄생한 것 같다. 그 때 이 책을 보았을 때에는 "공감해주는 여성들이 많이 읽겠지"하고 막연하게 생각했으나, 지금 와서 보니 오히려 남성들에게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것 같다. 곰곰 되짚어보니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더 많은 남성들이 이 책을 읽으면, 더 많은 남성들이 여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고, 결국은 더 살기 좋은 사회가 될 것이다.

(물론 남성들이 이 책을 많이 산 것은 선정적인 마케팅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마 출판사 측에서 그런 마케팅을 하는 모양인데, 광고 카피가 이렇더라: "남자들은 절대 알 수 없었던 대한민국 20대 여자들의 진짜 속마음 - 출간 즉시 전 언론 격찬! 수십만 네티즌을 들끓게한 비밀 실화에세이!" 책이 갑자기 싸구려처럼 느껴져서 광고 전략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책이 많이 팔린다면 언니네를 위해 좋은 일이 될 테니 그냥 눈감고 못본 척 하고 있다. 사실 카피가 아예 틀린 말도 아니잖아?!)

나 역시 이 책을 남성들에게 권하고 싶다. 여성에 대해서 여성과 한 번도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 적이 없는 남성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지점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물론 여성들도 편안한 마음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리라 생각한다. 성추행범에게 당당하게 대응하는 여성의 모습에서, 자신의 의견을 또박또박 피력하는 모습에서, 여성을 이해해주는 남성을 만나고 경험하는 모습에서, 남편의 바람에 걱정하는 모습에서, 때로는 통쾌하게 웃고 때로는 가슴 아파하며 눈물을 글썽이게 될 것이다.

문자 그대로 "내가 혼자가 아닌 그 곳"을 발견하고 들어서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아직 읽지 않은 분들이 있다면 책장을 넘기고 언니네 방으로 성큼 들어가시기를 바란다. 물론 책을 읽고 난 느낌은 모두가 다를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두가 앞으로를 살아갈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생각의 실마리들을 얻을 것이라는 점이다. 따뜻하면서도 냉철한 글들을 마주하고 싶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만약 구입하기 망설여지는 분이 있다면, 빌려드릴테니 몇 장 미리 넘겨보시는 것도 좋을 듯. 빌리고 싶은 분들은 말씀하세요. (단, 친구에게만 빌려줍니다.)

저작권과 공정이용, 만화로 만나보세요!


Bound By Law? (Tales from the Public Domain)

Keith Aoki, James Boyle, Jennifer Jenkins

Center for the Study of the Public Domain
March 15, 2006

Amazon에서 구입하기



Creative Commons에 관심을 갖고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그 개념과 유효성에 대해서 쉽게 설명하기란 상당히 어렵다. 특히 국내에서는 관련자료나 매뉴얼이 많지 않아서 더욱 그렇다. 마침 며칠 전에 76페이지라는 짧은 분량으로 읽어볼만한 만화책이 발간되었다. (via Joi Ito) 비록 영어로 되어 있어서 접근성이 낮기는 하겠지만, copyright와 creativity의 역학 관계, fair use, 그리고 remixed culture를 키워드로 하고 있는 만화책이 나온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저자들 중의 한 명인 James Boyle은 Creative Commons에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은 art, 특히 film을 소재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은 Creative Commons License를 채택(Attribution-NonCommercial-ShareAlike 2.5)하고 있어서 이 곳에서 무료로 읽어볼 수 있다! 그림이 좀더 귀여웠으면 좋겠는데, 신문 만평을 보는 느낌이긴 하다. ^-^;

국내에서도 Creative Commons License를 쉽게 설명하는 만화책, 혹은 동영상 등이 어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개인적으로는 짧은 동영상이 조만간 제작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하고 있다. 나중에 다시 소개하겠지만, 4월 17일부터 열리게 될 인디애니영화제 多樂Creative Commons Korea와 함께 하기로 이야기가 되었다. 3개월에 걸쳐 열리는 온라인 영화제이므로, 흥미롭고 신선한 작품들을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운영위원회는 모두 다재다능하고 의욕이 넘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더욱 기대가 크다. 행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이 팀과 함께 CCL을 쉽게 설명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볼까 한다. ^-^

우울한 열정



우울한 열정
원제: Under the Sign of Saturn

Susan Sontag 저
홍한별 역

시울
2005년 11월



구입하려고 마음만 먹고 있던 책인데 우연한 기회에 선물로 받게 된 덕분에, 다른 읽어야 할 책들을 제쳐두고 [우울한 열정]을 먼저 읽어버렸다. 이 책은 7명의 인물에 대한 손택의 에세이집이다. 원제인 Under the Sign of Saturn은 발터 벤야민에 대한 챕터의 제목을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과연 그 챕터가 내게는 가장 흥미로웠다. 나는 평전이나 회고록을 쓰는 작업은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모두에게 지루함만을 안겨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나는 대부분의 평전을 지루해한다) 이 책과 같은 에세이 형식이라면 그 반대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책의 주인공들은 모두 손택에 의해 해석된 모습으로, 예컨대, 이 책의 발터 벤야민은 "손택의 벤야민"이다.

아마도 에세이 형식이기 때문에 대단히 명징하게 손택에 의해 재해석되거나 재단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손택은 이 7명의 예술가들을 매력적으로 그리려고 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솔직하게 찬미하고, 때로는 세밀하게 분석하고, 때로는 냉정하게 평가할 뿐이다. 그러나 수천 페이지의 초고가 필요했다고 고백할만큼, 수많은 인용들과 함께 매우 사려 깊게 글을 써내려간다. 손택의 글들은 어떤 인물에 대한 부연이나 뒷얘기가 아니라 사람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가갈 것인가에 대한 방법을 보여주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을 다룬 챕터가 내게 가장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손택이 묘사한 그가 나와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어쩌면 고독에서 에너지를 끌어내는 사람들은 모두 그와 친화성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벤야민의 글에서 느껴지는 그 우울한 아우라가 전혀 낯설지 않았던 것도 내가 기본적으로 토성의 영향 아래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던 듯하다. 기질적인 유사함들을 따라 읽어내려가면서 상당히 기분이 묘했는데, 이는 다른 챕터에서는 그다지 느낄 수 없는 기분이었다. (기질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발터 벤야민은 현대 심리학을 경멸하여 중세 생리학의 4기질론을 선호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솔직히 피식 웃었다. 4기질론으로 따지면 그는 분명히 "우울질"일텐데, 나도 명백히 "우울질"로 결과가 나온다.) 우울한 열정이라는 우리말 제목도 참으로 적절하게 붙여졌는데, 아마 이 책을 구입하고 싶었던 이유가 바로 이 기질에 끌려서였던 것 같다. ^-^

덧글)
이 책의 오역들 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롤랑 바르트의 'doxa''최근 의견'으로 번역한 것이다. 물론 이렇게 번역할 수도 있으나(?) 내게는 책의 몰입을 흐트러뜨릴 수준의 오역이었다. 이 오역이 치명적인 이유는, 단순히 개념을 잘못 선택했기 때문이 아니라 역자가 이 단어가 들어간 문장 전체를 이해하지 못했음이 이 단어 하나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의 첫 8페이지는 2도 인쇄의 화보인데, 편집팀에서 매우 신경을 쓴 부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바르트의 아마추어리즘은..."으로 시작되는 부분은 잘못 인용되었다. 옥의 티라고나 할까, 무척 아쉽다. 2쇄를 찍을 때 수정되길 바라며.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

토니 마이어스 저
박정수 역
앨피
2005년 4월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 "지젝을 향한 너의 그 양가적인 감정에 대해서 나는 다 알고 있어."라고 말하는 듯한 제목을 달고 나온 이 책은 사실 제목만으로도 친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야, 너 그 책 제목봤어?"하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은 이 책을 손에 넣게 된다. 우리 선생님은 "이 제목,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를 패러디한거지?"라고 물으시며 흡족해하셨다. 사실 나는 "선생님, 오히려 제목이 그대로 가면 더 적절했을지도 모르지만, 글쎄요, 역자(혹은 편집부)가 그 정도의 센스는 없는 것 같은데요."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러지는 못하고 그냥 웃었다. 하지만 이 책은 선정적인 제목과는 달리 무척 깔끔하고 친절한 슬라보예 지젝 입문서이다. 그의 지적 배경, 그리고 그가 제기한 논의들 중 5개의 핵심적 이슈를 선정하여 하나하나 "떠먹여준다." 확실히 훌륭한 개론서를 써내는 것은 매우 커다란 기여임이 틀림없다.

슬라보예 지젝의 사상이 갖고 있는 가장 큰 특성은 그 독창성에 있다. 그는 늘 다른 이론가들에게 "그건 오해야(오독이야)."라고 말한다. (친구의 이야기에 따르면 지젝이 이번에는 "네그리와 하트가 맑스를 오독"했다고 비판했는데, 아무래도 헛다리를 짚은 듯 싶다고 한다. 대략 한달 전.) 지젝은 헤겔, 라캉, 맑스를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해석해냈는데, 특히 후기 근대에 들어서 모두가 외면해버린 헤겔을 되살려냈으니 가히 "헤겔의 재탄생"이라고 할 만하다. 이와 같은 독해를 바탕으로 그는 자신만의 분석틀을 만들어냈으며 현대 사회의 정치적 이슈들, 문화현상들, 그리고 대중문화(특히 영화)를 명료하게 분석한다. 이미 이러한 구체적인 작업들은 상당수가 국내에 번역되어 있는데, 그의 책들은 독자를 잔뜩 긴장시키며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했던 논의는 사이버스페이스에 관한 것이었는데, 아쉽게도 이 책에서는 그 부분을 다루고 있지 않다. 참고로 번역서에는 몇 가지 문제들이 있으므로 로쟈 님의 지적들을 참고해두는 것이 좋겠다. (그래도 다른 지젝 관련서들에 비하면 번역이 좋은 편이다. 다만 역자는 라캉의 세 범주 "상상계, 상징계, 실재"를 일관되게 "상상계, 상징계, 실재"로 지칭하고 있다. 실재는 "계"가 아니다.)

(1) 주체란 무엇이며 왜 중요한가?
지젝에게 코기토는 자연의 모든 것들이 부정된 이후의 텅 빈 장소, 즉 공백이다. 주체는 자연에서 문화로 이행할 때 "사라지는 매개자"로 기능하는 것이다. 우리는 실재로부터 상징계로 진입하면서 주체를 잃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주체는 언제나 그 상실을 회복하고자 하지만, 오히려 주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토대를 외재화시킨채로 둘 수밖에 없다(ex-timacy). 이렇게 상징계에 종속되는 과정이 곧 주체화과정이다. 그러나 여기에 저항할 수는 없는가? 지젝에 따르면 사람들은 상징계의 요소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엮어내는 서사적 능력을 갖고 있어서, 주체는 변하지 않는 공백으로 남지만 "자기(self)"는 반복하여 갱신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미 우리의 "자리"가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이것이 저항적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주체에 대한 강력한 이론화와는 달리, 대안에 대한 지젝의 이론화는 늘 빈약한 느낌을 준다. 기껏해야 "의미화실천"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의심스럽다.

(2) 포스트모던의 끔찍한 탈근대성
국내에 "성찰적 근대화론자"로 알려진 기든스, 벡, 래쉬/어리 등은 후기 근대를 "위험사회"로 명명하면서도 동시에 자아의 성찰성/재귀성(reflexivity)이 갖고 있는 긍정적 가능성에 주목하였다. 물론 그것이 "폭주하는 자동차"와 같은 불안한 것임을 경고하였지만, 환경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재귀적 자아가 갖고 있는 잠재력은 생산적 희망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젝은 재귀성의 의미를 완전히 뒤집어버린다. 대타자의 권위가 사라져버린 상황에서 사람들은 재귀적으로 "사적인 법(지배종속관계, 새도매저키즘)"에 얽매이게 된다는 것이다. 귀환한 초자아는 쾌락을 명령하고 사람들은 오히려 스스로를 규제하게 된다. 이와 같은 지젝의 논증은 실제 사례에 적용하기도 어렵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그간의 성찰적 근대화론을 자신있게 끌어와 반박할 정도로 이론적으로 엄밀한 것은 아니다. 하나의 반례 정도로 생각하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다른 방식으로 통제를 원하는 "경향"이 있고 그것이 현대 사회의 "징후"라는 것은 전적으로 납득가능하다. 이와 같은 현대인의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지젝은 놀랍게도 아예 이런 조건 자체를 없애는 것을 제시한다. 상징적 질서를 거부하고 혁명을 일으키자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방향으로?! 내게는 이것이 히스테리컬한 비약으로만 느껴질 뿐이다. 후기 근대적 자아가 갖고 있는 재귀성을 무력화시킨 이후에도 사회혁명이 가능한가?!

(3) 이데올로기에서 현실을 구분해내는 법
내게 가장 익숙한 논의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지젝의 주장들 중 하나를 다룬 챕터이다. 슬로터다익이 제안한 공식, "그들은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을 잘 알지만, 여전히 그렇게 행동한다"는 명제는 냉소적 주체의 등장을 알린다. 지젝은 그의 논의를 받아들인다. 즉 이데올로기는 앎의 문제가 아니라 행함의 문제이다. 따라서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는 오히려 이데올로기 기계로서, 의식보다 행위로 먼저 이루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알면서도 그대로 행동하는 인형같은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실 냉소하지 않으려는 결단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지젝은 오늘날에도 이데올로기 비판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토대로서 냉소적 주체론을 활용했을지 모르지만, 사실 정치적으로 무감각한 사람들을 마주하고 있는 나로서는 냉소적 주체를 극복하는 것은 매우 절실한 문제다. 냉소적 주체가 확신하고 있는 것과 달리, "세계는 이항대립이 아니라 삼원체계이고 여기서 이데올로기는 상징계와 실재 사이의 유령같은 보충물과 같은 것으로 기능한다"는 것을, 그들이 간파하게 되면 상황이 달라질까?! 결국 지젝은 실재를 직시하고 구분해내라는 말을 하고 싶어하는 것이라는 점을 잘 안다. 그러나 실재에 접근하기 위한 보다 즉물적인 방법으로 우리는 "냉소적 주체"를 대체할 새로운 주체의 모습을 창안할 수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이입"이라든가. 예전에 수업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어쨌든 삼원체계 모델은 많은 통찰을 주는 것이어서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최근 나는 "몸"을 이론화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4) 같은 행성에서 온 남성과 여성, 그 사랑의 이데올로기
"성 관계는 없다", "여자는 남자의 증상이다"와 같은 센세이셔널한 명제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지젝의 사상들 중에서 가장 불만족스러운 부분이다. 지젝 특유의 독창성이나 흥미로움이 다소 반감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페미니스트들에게는 특히 비판적으로 접근되었던 논의인데, 사실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정신분석학이 효과적으로 반박되었던 적은 거의 없으며 이 책에 소개된 주디스 버틀러의 반론도 다소 부적절하게 느껴진다. 정신분석학에 대한 메타비판보다는 차라리 (지젝처럼) "창조적 오독"을 통해 그것을 페미니즘에 생산적인 방식으로 전유하는 것이 더 낫다. 사실 성적 차이는 실재적인 것이어서 상징화가 불가능하며, 결국 이 둘의 관계는 실패한다는 지젝(그리고 라캉)의 논의를 거부하기는 어렵다. 15년쯤 전에 필리프 쥘리앵은 사랑은 "두 개의 오해가 서로 겹치는 것", 즉 실패한 행위라고 썼다. 이 때 쥘리앵은 실패는 곧 성공이라는 윤리학적 입장을 취하는 반면, 지젝은 사랑은 성 관계의 불가능성을 은폐하는 이데올로기라는 입장을 취하는 듯 싶다. 내게는 두 가지 입장이 모두 불충분하게 느껴지고, 라캉에 기반하면서도 좀더 정교한 제3의 태도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는데 아직 답을 내린 것은 아니다.

(5) 인종주의는 왜 항상 환상인가?
이 챕터는 지금까지 살펴본 지젝의 이론으로 인종주의를 분석하고 있으며, (1) (2) (3)과 밀접하게 얽혀있는 부분이다. 인종주의는 진정 환상이다. 인종적 타자는 우리의 향락을 훔치려고 하거나, 아니면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향락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에 대한 상식이 증가하고, 다문화주의가 힘을 얻고, 인권과 평등에 대한 도덕적 가치가 확산되더라도 인종주의는 여전히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은 자신의 인종차별적 행위를 다양한 지식을 동원하여 정당화하기까지 한다. 이와 같은 태도는 논리적 설득으로 타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완벽하게 자기충족적인 설명 속에서 우리는 무슨 대안을 찾을 수 있는가?! 지젝은 고육책으로 세 가지 방안을 제시하는데 솔직히 이것은 대안이라기보다는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로 다가온다. 첫째, 환상의 윤리학. 둘째, 시민사회보다는 정부를 지지할 것. 셋째, 환상을 가로지르기. 첫번째는 너무 절충주의적이고 봉합적인 것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세번째 방법과 양립할 수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두번째 주장은 민족주의라는 아킬레스건을 갖고 있는 사회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대안이라는 점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선택할 수 있는 사안들은 한정되어 있다. 인종주의는 디아스포라 시대에 더더욱 면밀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으로, 이보다는 훨씬 더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일상의 대안들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지젝에게 위와 같은 방식으로 정치적 대안까지 요구하는 것은 한편으로 부당할 수도 있다. 이미 그는 우리에게 세계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하나의 틀거리를 제공했고 정신분석가로서의 소임을 훌륭하게 해냈기 때문이다. 사실 설명가능한 사례들이 얼마나 많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다음 단계가 필요하다. 일단 라캉 이후의 성차의 존재론이 갖고 있는 한계는 여성들의 lived experience와 sexed bodies에 대한 면밀한 분석으로 끊임없이 검토되고 다시 쓰여질 수 있다. 다음으로 인종주의라는 환상에 맞서 "타자"가 취할 수 있는 보다 매력적인 대안은 호미 바바가 일찍이 지적했듯이 stereotype을 역이용하여 긴장을 발생시키는 전략을 들 수 있겠다. 이 두 가지는 친구들과 오늘 이야기한 많은 것들 중 일부.

Net, Web, and counter-Net

"[...] within the Net there has begun to emerge a shadowy sort of counter-Net, which we will call the Web (as if the Net were a fishing-net and the Web were spider-webs woven through the interstices and broken sections of the Net). Generally we'll use the term Web to refer to the alternate horizontal open structure of info-exchange, the non-hierarchic network, and reserve the term counter-Net to indicate clandestine illegal and rebellious use of the Web, including actual data-piracy and other forms of leeching off the Net itself. Net, Web, and counter-Net are all parts of the same whole pattern-complex --they blur into each other at innumerable points. The terms are not meant to define areas but to suggest tendencies.

(Digression: Before you condemn the Web or counter-Net for its "parasitism," which can never be a truly revolutionary force, ask yourself what "production" consists of in the Age of Simulation. What is the "productive class"? Perhaps you'll be forced to admit that these terms seem to have lost their meaning. In any case the answers to such questions are so complex that the TAZ tend to ignore them altogether and simply picks up what it can use. "Culture is our Nature" --and we are the thieving magpies, or the hunter/gatherers of the world of CommTech.)"

- Hakim Bey, [T.A.Z. : The Temporary Autonomous Zone, Ontological Anarchy, Poetic Terrorism], Autonomedia. 中

I found this cool notice in the book:
Anti-copyright, 1985, 1991. May be freely pirated & quoted -- the author & publisher, however, would like to be informed at: Autonomedia, P.O. Box 568, Willamsburgh Station, Brooklyn, NY 11211-0568

FYI, you can find some interesting contents or join their mailing list on the official website. Of course, you can buy their books, too!!!:
http://www.autonomedia.org/

Personal, Portable, Pedestrian


Personal, Portable, Pedestrian
: Mobile Phones in Japanese Life

Mizuko Ito
Daisuke Okabe
Misa Matsuda

The MIT Press
2005

Available on Amazon.com



[Personal, Portable, Pedestrian: Mobile Phones in Japanese Life] is out, at last...! I was waiting for the publication, so I ordered this book as soon as I heard this news. You can see the contents and even can download the introduction HERE.

The title of the book is very familiar for me. Mizuko Ito presented her paper, "Personal, Portable, Pedestrian: Lessons from Japanese Mobile Phone Use", at International Conference on "Mobile Communications and Social Change" held in Seoul last year. I read her article several times, even summurized and translated it for self-study and sharing with colleagues. The main research field was Japan, but her findings can applied to the case of Korea. I mean, I could understand the experience of myself related to historical/technological/cultural genealogy when I read her article. (I used some pagers from my middle school days, and I bought a mobile phone when I graduated high school.) She conducted interviews/participant observation carefully as an anthropologist, so the readers can learn much things both on theoretical aspect and on methodological aspect.

I think she will visit Seoul again for her project with Art Center Nabi. I hope I can meet her again, moreover, get her book autographed. ;)

* Mizuko Ito를 비롯한 세 명의 연구자들이 편저한 책 [Personal, Portable, Pedestrian: Mobile Phones in Japanese Life] 이 출판되었습니다. 10월 경에 Mizuko Ito가 방한할 듯 싶기는 한데, 아직 정확하게는 모르겠네요. 호출기/휴대폰의 사용에 대해서 꾸준히 천착해 온 결과물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짧은 기간만을 다루는 기술적/통계적 연구에 비하여 재미있는 시사점들을 발견할 수 있는 책입니다. gender studies의 관점에서도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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