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PERCORTEX

친밀성과 '오타쿠' 사이의 긴장을 넘어

* 이 글은 연세대학원신문 2008년 4월호의 [광고비평] 란에 기고한 글입니다.


친밀성과 ‘오타쿠’ 사이의 긴장을 넘어

‘새로운’ 기술들은 늘 ‘낯선’ 것일까. 사실 신기술과 신제품의 출현은 언제나 다양한 종류의 긴장을 동반한다. 가장 단순하고도 일반적인 사례를 떠올려 보자. 산업적으로는 충분히 상용화된 신기술이 소비자들의 생활 속으로 침투할 수 있느냐의 문제. SKT는 ‘영상통화’를 소비자들이 ‘완전정복’할 수 있도록 매뉴얼 광고를 제공했지만, 그 매뉴얼의 엉뚱한 친절함은 기술과 소비자 사이의 간극을 해소하는 데에 어떠한 기여도 하지 못했다.

한편, 우리에게 익숙한 기술들이라 하더라도, 다시금 새로운 얼굴을 하고 우리를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 기술의 컨버전스(convergence)와 다이버전스(divergence) 사이에서 기업이 어느 한쪽의 극단적인 전략을 선택했을 때가 그러하다. 이 때 소비자들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 줄 것인가의 문제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KTF EVER 광고를 보라. 휴대폰을 온갖 기술과 서비스의 ‘사칙연산’이 가능한 그 무엇으로 재현하고 있다. 이것은 소비자들의 모든 일상과 활동 패턴이 휴대폰에 집적될 것이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가능한 모든 기술을 휴대폰에 ‘더하기’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나 ‘낯선 기술’은 때로는 그 자체로 ‘매력적인 기술’과 등치되기도 하는데, 위에서 언급한 사례들은 실은 그러한 인식을 자극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트렌드(!)라고 외치는 것이다. 하지만 정반대의 방식으로 소비자들을 공략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새롭지 않다’, ‘이것은 낯설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미 그 기술이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 있다는 듯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광고들이 그러하다. 예컨대, 매력적인 연예인들이 등장하여 디지털 기기와 함께 ‘혼자놀기’를 하고 있는 경우, 더 이상의 광고가 필요치 않을 정도로 이미 그 기술이 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LG CYON의 광고들을 보라.) 이러한 광고들은 이미지 광고, 캠페인 광고와 달리 소비자들에게 보다 자연스럽게 각인되는 경향이 있다. 익숙하기 때문이다. (또는 익숙해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낯설지 않은 (바로 당신의) 기술’임을 강조하는 광고들 중에서 예기치 못한 긴장을 발생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흥미롭게 지켜볼 만한 사례로는 Nintendo DS Lite(이하 NDSL) 광고를 들 수 있다. 이는 광고 자체가 유발한 긴장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맥락적 요소들로 인한 긴장이기도 하다.

사실 신기술은 때때로 폐인(geeks), 괴짜(nerd), 혹은 나와는 다른 종류의 인간(early adopter)의 이미지와 연결되고는 한다. 그런데 NDSL은 이를 넘어 ‘오타쿠’와 짝을 이루고 있(었)다. ‘오타쿠’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것이다. ‘오타쿠’는 마치 판타지와 같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고정관념을 자극하는 이미지로서, 실체가 없으며 타자화에 용이한 다양한 연상작용을 불러일으킨다. 닌텐도 사(社)가 한국에 진출하기 전까지 NDSL은 오타쿠를 상징하는 다양한 기표들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지하철에서 ‘핑크색’ NDSL을 들고 <응원단> 게임을 하고 있는 덥수룩한 헤어스타일을 한 20대 남성의 이미지! 다가갈 수 없는,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였다.

NDSL의 첫 번째 광고 시리즈는 이런 맥락을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저항과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즉 당황스럽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장면을 보여주었다. “절대로 게임이라고는 하지 않을 것처럼 생긴(닌텐도 측이 설명했던 광고 컨셉)” 장동건과 이나영이 편안한 옷차림을 한 채, NDSL을 들고 흐뭇한 표정으로 게임을 즐기고 있다! 이후의 광고들도 역시 ‘낯설지 않음’을 넘어 ‘친밀성’ 그 자체를 담고 있었고, 그것은 아주 빠른 속도로 사람들의 생각을 잠식해나가기 시작했다. 긴장은 탄성으로 바뀌었다. ‘오타쿠 이미지’라는 부가적인 긴장을 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신기술들이 극복하지 못했던 ‘일상에 침투하기’를 가장 잘 실현한 광고가 바로 NDSL 광고다. 그 결과,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지만 국내에서 NDSL은 게임기들 중 단일 기종으로서는 최고의 판매량을 기록했으며, 지금도 이 상승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

이제 자신감을 얻은 닌텐도 사(社)의 광고 전략은 ‘홈 엔터테인먼트’로서의 NDSL을 강조하는 것이다. 더 이상 멋진 연예인의 이미지를 빌릴 필요도 없다. ‘오타쿠’는 이제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있는, 그리고 어디라도 함께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할아버지부터 손녀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이동가능한 친밀성’ 그 자체가 되었다. 이 기술이 어떻게 확장되어 나갈 것인가는 이제 앞으로가 더 중요한 문제다.

<<  1 2 3 4 5 6 7 8 9 ... 280 to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