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문제
* 이 글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 읽고 싶지 않으시거나 바쁘신 분들은 skip하시면 되겠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다.
A: "○○씨는 사업을 하면 참 잘하실 것 같아요."
나: "저는 계속 공부할 건데요."
A: "아, 공부하셔도 잘하실 것 같아요."
나: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B: "○○씨는 사업하실 생각은 없으세요?"
나: "박사과정 준비중인데요."
B: "사업하시는 모습이 어울릴 것 같은데."
나: "..." (대답할 말을 못찾고 스스로에 대해 고민함)
누군가가 물어올 때마다 단호하게 나의 영역은 아카데미아라고 대답하곤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영역을 굳이 "학계"로만 제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물론... 이른바 "업계"와도 긴밀하게 상호작용해야 한다는 것은 내게 중요한 가치들 중의 하나였지만, 아예 업계에 몸담아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본격적으로 이런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몇 가지 중요한 계기들이 있기도 하다. 실은 최근 몇몇 포털로부터 job offer를 받고는 애써 중요한 결정을 미루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력서 한 통 보내주세요~"라고 했는데 "네~"하고 대답만 해놓고는 아무것도 보내지 않은 채 일주일이 흘렀다. 바빠서 그런 것도 있지만, 스스로가 선택의 순간을 계속 지연시키고 있는 탓이 더 크다. 중요한 결정을 빠르게 해낼 것을 요구받는 경우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고, 내게는 늘 선택이란 어려운 것이었다.
학문적인 성취에 대한 기대감도 있지만, 인터넷 비즈니스 분야에서도 나름대로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흔히 웹 기획, 서비스 기획, 커뮤니티 기획이라고 불리는 것들 말이다. 내 블로그의 독자들은 내가 쓴 글을 읽으면서 "순수한 인문학도"라고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일을 할 때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일한다. 마치 전혀 다른 두 개의 뇌가 작동하는 것 같다. 물론 그들 사이에는 당연히 접점이 있기 마련이지만, 때때로 통속적인 마케팅 쪽으로도 머리가 돌아가는 것을 보면 그간의 "공부벌레" 이미지는 완전히 틀린 것이 아닐까.
물론 내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실망하거나 싫어할 사람들이 많다. 우선 부모님은 "도대체 이 아이가 언제 유학 수속을 밟을 것인가"로 노심초사하신다. 때문에 내가 이런저런 일을 가져오거나(오늘만해도 SK에서 새로운 일을 받아왔다) 다른 활동을 즐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신다. 또한 대부분의 내 친구들은 "과연 언제 모든 일을 다 접고 유학 준비에 매진할 것인가"를 놓고 나를 혼내고 다그친다. 다 접어버리고 GRE나 보라는 것인데, 내 성격상 유학 준비에 얽매일 것 같지는 않다. 시험을 망치면 할 수 없는 노릇이고. 반면에 내가 지금껏 쌓아온 다양한 인맥의 사람들은 그만큼 내게 다양한 것을 기대한다. 내가 자주 연락하는 국내외 인맥들을 찬찬히 짚어보면 학계보다는 업계가 많고, 어찌 보면 사업을 했을 때 더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최근 며칠 동안 내 미래를 놓고 가능한 시나리오들을 여러 개 그려보면서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내가 능력이 조금만 더 뛰어나다면 최선의 시나리오를 그릴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아무래도 힘에 부칠 것 같아서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고민이 충분하지 못한 탓일까, 여전히 선택은 어렵다. 좀더 나이를 먹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오히려 선택이 쉬워질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지금의 나는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해서, 돌파해야 할 과제들을 목전에 두고 있기 때문에 끼어드는 다른 제의들에 눈돌릴 틈이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업계와의 인연은 놓지 않은 채로, 일단은 박사과정 입학을 우선순위로 해야겠다. (아, 둘 다 잡겠다는 이 욕심...) 그래도 언젠가는 인터넷 비즈니스를 꼭 해보고 싶다. 마음도 잘 맞고 능력도 있는 좋은 파트너를 만나서, 그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녹여낸, 사람을 움직이는 문화 비즈니스 말이다. "IT 비즈니스와 손잡고 있는 문화인류학자"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영역들 중의 하나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아마 내 성격상, 내 사업을 가지고 논문도 쓰겠지!
덧글)
맘이 너무 답답한데,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쓸데없는 글을 끄적여보았다.
이렇게 써 놓고 내일 또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겠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고, 한 길 마음 속도 알 수 없으니.






